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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

어느 곳에 있어도, 누구와 함께 있어도, 그 여름 그 사건이 일어난 시간이 다가오면 시간의 틈바구니에서 붉은 두 눈을 번뜩이며 그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저주받은 흉가. 그들은 모두 흉가에 의해 사로잡힌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지옥의 뒤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어떤 불가사의한 사건에 의해 시간의 틈새로 빠져버려 살인귀가 된 사나이. 이미 살인의 쾌락을 알아버려 살인을 멈출 수 없는 사나이. 흉가에서 말하려는 공포는 완전히 고립과 존재의 정체성. 절대적으로 믿었던 현실의 틀이 무너지고 세상 한편에 오로지 홀로 버려졌을 때 은밀히 다가서는 공포, 철석같이 믿었던 과거의 시간들이 일순간 사라질 때 느껴지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것들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얘기들이다.

예전에 데뷔작은 작가의 모든 걸 말해준다 란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이 애기는 데뷔작은 그 작가의 최고작품이라는 애기는 결코 아니죠. 다만 모든 이야기의 원형이 담겨있다는 애기로 이해하면 될 것 같아요. 그 애길 듣고나서부터 데뷔작을 열심히 챙겨보게 되었는데. 흉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인 이종호님의 데뷔작인줄 알았던 작품이에요. 유감스럽게도 데뷔작이 아니더라구요. 저도 사고 나서 알게되어서, 약간 실망했습니다.

보게 된 게 최근이지만 후기등을 보았을 때는 링이 막 국내에 소개된 직후의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공포 장르에 대해서야 황무지 같던 국내시장이지만 가끔 대작이 나오면 단비처럼 이런저런 공포 작품들이 나오곤 했죠. 흉가도 링이라는 단비 덕분에 국내에 소개될 수 있었던 작품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단지 후기 때문이 아니에요. 흉가가 다루고 있는 흉가는 과거와 현재가 접목되는 묘한 장소입니다. 예전에 죽은 사람들이 다시 나타나고, 현재에 사라진 사람들이 시간을 뛰어들어 나타나기도 해요. 공포소설의 소재로는 훌륭한데, 이런 소재는 과학적 해명과는 떨어진 소재입니다. 공포라는 것은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도 있기 때문에 과학적 해명이 필요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중평행론이라는 이론을 통해 공포를 해명하려는 점이 과학과 공포가 접목된 링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초반부의 흥미진진한 전개에 비해 다중평행론이 집중되고,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후반부는 약간 실망스럽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한번에 풀어내려고 해서일까요? 전반부의 전개만 잘 유지되어서 마무리만 잘되었다면 최근 작인 모녀귀나, IF에 뒤지지 않는 좋은 작품이 되었을 텐데 말이죠. 공포 소설을 좋아하고, 저처럼 이종호라는 작가에 대한 호감을 갖고 계시다면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품절임에도 불구하고 구하기는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참고로 이종호님의 데뷔작은 유체이동이고 그 후로도 그림자, 사자의 나라를 거쳐 흉가입니다. 아마도 전 작품들을 찾기는 만만치 않을 것같네요.

by 카구라 | 2009/06/14 17:15 | 한국소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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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isgray at 2009/06/14 22:09
다중평행론도 그렇고, 저 문구에서 보이는 내용의 유사성도 그렇고, 이종호 씨의 흉가는 개인적으로 유상옥 감독의 고양이여인숙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고양이 여인숙과는 발행 텀이 좀 있었군요...
저도 후반부에 참 실망을 많이 했던 작품입니다.
Commented by 카구라 at 2009/06/15 15:26
그러고 보니 고양이 여인숙도 비슷한 소재였던 것 같긴하네요. 문제는 기억이 안나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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